[함께 읽기] 종교가 필요한 우리
1과: 종교가 필요한 우리
의미를 찾는 인간, 희망을 찾는 그리스도인
1. 물음을 던지는 인간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기까지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것은 생물학적 생존본능과는 구별되는 인간의 특별한 생존 능력이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넘어, 늘 “왜 사는가?”와 같은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할 때 비로소 인간은 삶에 의미를 알고, 그 삶을 움직일 목적과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된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이 삶에서 던지는 근원적인 물음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둘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셋째,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은 우리 삶 전체를 관통하고 움직이게 하는 질문이다. 또한 이것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진리와 선, 희망이라는 세 가지 축 위에 세워 놓으며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진정 너는 누구냐?”라고 말이다.
먼저 보편적인 관점에서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이란, “역사 속에 생생하게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가족, 이웃, 동료를 통하여 삶을 공감하고 인격을 성숙시키며 자기를 끊임없이 발견해 나가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에 의하면, 인간은 ‘시간과 공간 속에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존재(피투된 존재, Dasein)’로서, 단지 태어났다는 사실로 인해 세상을 살고, 늙고, 죽는 거부할 수 없는 순리 위에 놓인다. 그 과정에서 우리네 삶이 마주하는 희노애락 또한 분명한 현실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인간은 여러 실존적 상황들 가운데 그 의미에 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호스피스 병동에서 어느 환자가 병세가 악화되는 것을 보며 ‘나에게 하필 왜 이런 고통이 주어졌는가?’, ‘나는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병실에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 내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가정해 보자. 만일 이 환자가 이 물음에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는 앞으로 자기 인생에 무엇이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기에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 이처럼 그의 ‘불확실성의 체험’은 지금껏 삶을 움직여 오던 모든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2. 의미 체험의 종교적 해명
‘의미가 없다’는 것은 곧 한 사람에게 있어 ‘희망의 부재’를 뜻한다. 이 부재의 상태는 질병일 수 있고, 관계에서 오는 미움과 분노일 수 있고, 가난이라는 실존적 고통 때문일 수 있다. 이 같은 의미가 결핍되는 체험은 때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문득 ‘우연성(Contingency)’을 띄며 나타난다. 사람은 그에 답하고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때로는 커다란 장벽에 가로막힌 듯 의미 부재로 인한 불확실성의 상태에 오래 머무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인간 실존이 해결하기 어려워하는 주제는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인간 실존의 마침이자, 그 존재 가치의 상실이며 희망이 상실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죽음과 가까워진 인간은 “이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으며 실존적 영역을 넘어선 의미 체험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한다. 이처럼 인간이 실존적인 영역을 뛰어넘는 질문을 던지게 능력은, 인간의 존재론적인 특성이자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으로서 자기 존재를 뚜렷이 드러내는 순간이다. 범주적이고 시공적으로 파악된 사항만이 아니라, 초월 그 자체로 눈을 향할 때 비로소 인간은 종교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초월로 시선을 돌리는 종교성을 바탕으로 이러한 생각에 도달한다. 바로 인간이란 죽음을 통해 단지 무의미로 매몰되지 않을 수 있으며, 초월을 향해서 무한히 개방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종교(宗敎)’는 바로 인간의 삶이 불확실성의 체험을 뛰어넘고 그 의미를 기획할 수 있도록 필요한 가르침을 제시한다. 인간은 종교를 통하여 죽음, 고통, 좌절, 회의감, 불안, 절망 등 불현듯 찾아와 그동안 내게 삶의 의미였던 것들을 더 이상 의미일 수 없도록 만들었던 무수한 사건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희망을 간직하고 살도록 해준다. 삶의 불완전성을 뛰어넘고 영원한 완전함에 대한 인간의 깊은 갈망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종교의 역할이며 그것이 우리 삶에 필요한 이유이다. 희망이 없는 삶은 지속 불가능하다. 결국 인간이 종교인이 된다는 것은, 너른 희망을 향한 인간의 초월적 발돋움이며, 종교가 지닌 의미 지평에 자신을 온전히 개방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의미 체험의 그리스도교적 해명
세계 내 다양한 종교 가운데 그리스도교는 바로 2천 년 전 역사적 인물, 나자렛이라는 고을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기존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고, 초월을 향한 희망을 발견하고자 모인 종교이다. 그리고 이 같은 종교적 결단을 바탕으로 예수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Q.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려고 마음을 먹게 되었는가?’
우리는 이 예비자 교리 시간을 통하여 단지 ‘그리스도교란 무엇인가?’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내가 이 시간을 통하여 무엇을 발견하고자 하는지’ 그 갈망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예수와의 만남을 통하여 초월을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이 자리에 있다.
성경을 펼쳐 보면, 그곳에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우리와 같이 희망을 발견하고자 하고, 마침내 그분을 통해 희망을 발견한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들은 단순히 나열된 예수에 관한 역사적 기록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받아들이도록 강요받지 않았다. 이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달한다. 진정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예수라는 인물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삶에 진정한 의미와 희망을 일깨워 줄 수 있을지, 초월을 향해 끝없이 개방된 자신을 그 인물에게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통해서 얻은 새로운 삶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우리가 삶에서 겪는 비구원적 상황(죽음, 절망, 고통, 슬픔 등)들을 뛰어넘을 초월적 희망을 제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네 자신이 누구인지’, ‘네 인생이 왜 시작되었으며 어디를 향해 가는지’와 같은 존재론적인 질문에 대한 의미와 방향과 목적을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그리스도교의 의미 지평에 우리 삶의 의미를 확장시킬 준비가 되었는지 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우리의 결단은 결코 종교적 환상으로의 도피가 되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더 나은 삶의 의미를 예수를 통하여 발견해 보겠다는 내적 결심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다음 질문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답해보도록 하자.
현재 내 삶의 의미는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는가?
2. 종교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3. 이 예비자 교리의 여정을 통해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